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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시아 선교활동 5

루카스허LukasHeo 2006. 2. 21. 13:30

 

 

 

 

 

--예수 믿기로 예약한 롱하우스 벌라이 --


2002.1.18. 금

이틀 전에 예약한 시외 뻐스가 7 mile에 서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오늘 아침에는 20분 전에 전화로 예약했다. 의외로 Sarawak Transportation 버스가 정차를 했다. 그런데 왠글? 기름 넣는다고 30분 소요하고, 휴게실에서 미처 타지 못한 승객을 3키로 미터나 가서 기다린다고 40분 지연했다.


현지 목사와 스리아만에서 만날 약속 시간을 1시간이나 미루게 되었다.

3시간 거리를 4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그래도, 다니엘 목사의 아우 사무엘을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고 1시간 쯤 더 있다가 핸드리 집사를 만나서 출발했다.


벌라이(Blaie) 롱하우스.

마을을 1997년 12월에 방문한 바 있다. 추장 Sandin씨의 말씀을 기억한다. 롱하우스 공사가 끝난 후에 믿기로 하겠다. 지금 가장 현대식으로 지은 롱하우스가 거의 완공이 되었다. 그래도, 2번 더 방문했지만 그가 이반 풍습상 손님을 반기기만 하지 아직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2 주일 전에 우리(나, 현지 목사 다니엘)를 초청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라나?

밀림의 작은 뱃머리 빠이스(Pais)에서 가까운 벌라이 롱하우스에 1시간 30분만에 스피드 보트로 도착했다. 소나기가 간간이 와서 준비해간 비옷으로 막으니, 비를 거의 맞지 않았다.

한번은 4시간 뽀트를 타고 가는데 세찬 비를 맞아서 속에서부터 한기가 나온 경험이 있었다. 밀림에서 얼어 죽는다는게 이런 것인가? 경험을 한 바가 있어서 가벼운 비닐 비옷을 준비한 것이 이번에 요긴하게 쓰인다.


추장과 부인, 그 며느리와 아들과 손녀 2명이 맞이한다. 밝은 표정에 웃음이 사뭇 예전과는 다르다. 벌라이 롱하우스는 세멘트와 타일 공사를 해서, 고풍이 나지 않는다. 깨끗하다.

요즈음 웬만한 추장 집에는 CD Player가 있다. 예수 영화 CD만 가져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 알아보니, 이미 예수 영화 CD를 보급된 마을이 많다. 그러면, 다른 기독교 영화 CD를 가져와야 하겠다. 예수 영화를 보고도 개종하지 않는 이반족들이 지독하다.


이반족은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누가 뭐라해도 자신들이 결정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드디어 저녁에 집회가 시작되었다. 주민들이 60 명 모였다. 담배를 자욱하게 많이 피워야 개종하겠다고 나서는 그들인 것을 2번이나 경험한 바가 있다. 고민을 한다는 증거다. 바둑의 수를 장고하는 기사들이 담배를 계속 피우는 것도 고민의 소산이 아니던가? 오늘은 몇 명만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좋은 소식이 있기는 어렵겠다.          


인사와 전도를 1시간에 걸쳐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이 끝났다. 6 명이 와서 아픈 곳을 호소하고 기도해 주기를 바라며 요청해왔다. 남편이 암으로 돌아간 부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이 부인은 남편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전도를 받고 이미 예수를 믿고 있었다. 그 부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여튼 6 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다짐을 개인적으로 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기록했다.


그런데, 2월 초순경에 나를 빼고, 현지 목사 2사람이 다시 가서 전도했는데, 추장 가족과 다른 1 가족을 제외하고 19 가족이 예수를 믿었다고 전달을 해 주었다. 할렐루야! Puji Tuhan! 그리고 1 가족은 예수 믿기로 예약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반족 최대 명절인 가와이(Gawai)를 지낸 후에 개종하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20 가족이 믿었다. 1 가족이 평균 5명이니까 100명 가량 기독교로 개종한 셈이다. 특이한 것은, 추장을 빼고 주민들이 먼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다. 추장 눈치 보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 이반족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은 우리가 배워야할 제도이다.


성경책을 기부하라고 해서, 20 권을 꾸려 놓았다. 원래 판매용으로 1권에 30링깃(싱15불, 미화 8불, 한화 10,000원) 구입한 것이지만 개종했을 때는 기증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된다. 3월 14일에 벌라이에 갈 계획인데 그 때 이반 성경책인 Bup Kudus를 가져가야 하겠다.


이미 100% 예수님을 믿고, 101 명 성인 중에 63 명이 2002.1.1에 세례를 받은 숭아이 삐낭 롱하우스 전도팀(Villy, Roslyn 외 청장년)이 매 주일 오후에 벌라이 마을까지 배를 타고 내려와서 예배를 인도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다. 아! 기도를 들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복음의 씨를 뿌려 놓으면 거두게 된다.--


*선교 활동 경비 보고

항공료      S$165

시외뻐스    S$ 13

뽀트        S$150

계          S$328 (말레시아 656링깃, 미화88불, 한화 114,800원)  

 

 


동말레시아 선교 활동 연재 제11회

--롱하우스 다라이 --

2002.1.19. 토


아침 일찍부터 벌라이 마을에서 떠날 듯 했다. 오전 8:30 되어서 비가 엄청 퍼부어서 9:20까지 지연 되었다. 그 사이에 숭아이 삐낭 마을 전도팀들이 처음으로 처녀 출장을 간다고 모두 벌라이(Blaie) 마을에 도착했다.


숭아이 삐낭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지 꼭 2년 된다.  63명이 지난 2002.1.1.에 강물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던가? 2 명은 늙은이로서 강가에까지 내려갈 기력이 없어서 롱하우스 딴주(Tanju, 열매나 빨래를 말리는 곳)에서 물 한 동이 세례를 받았다. 이제 이들 가운데 10대 ,20대, 30대 남녀 14 명이 이제 모두 전도자가 되어 우리(다닐, 허선교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비는 억수같이 롱하우스를 짓누르고 기온이 떨어져서 몸이 추워오지만 전도의 열기는 열대의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고 하면 과장일까? 과장이 심한 듯 하나 사실이다.


익히 아는 얼굴들이라 반가왔다.

30분간 급류를 타고 모두들 복음 출사표---

7명 가량 타는 보트가 3대이다. 스리아만에서부터 1대, 숭아이 삐낭에서 2대.


이제 복음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다라이(Darai) 마을행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막강한 전도 팀이다.


낭아 다라이 롱하우스는 처음 가는 길이다. 다니엘 까와 목사도 처음이란다. 1시간 도보 거리이다. 산행인데, 방금 비가 와서 길 형편이 어떨지?

모두 도착한 곳은 낭아(Nanga) 즉 강 입구에서 내렸다. 세멘트 계단이 강가에서 20개 정도 놓여 있다. 벌써 먼저 계단 위로 올라간 친구들도 있다.


“버르도아 둘루 Berdoa dulu! 기도부터 먼저!“

내가 외치자, 다닐 까와 목사가 기도를 했고, 전원이 통성 기도를 했다.


 반드시 롱하우스 전도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을 특별히 간청하면서, 행보와 전도시에 안전을 부활하신 주님의 영,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

혹자는 무슨 기도가 필요하냐?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별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빛이 가면 어두움은 물러간다. 그러나, 성령의 빛을 입지 않고 가면, 어두움의 세력은 우리의 용기를 꺾기 위해 온갖 방해를 한다.


사도 바울이 선교 경험상 항상 기도하라고 했으니, 항상 기도하는 것이 좋다.

기도할 때 그냥 “오 주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라고 형식적으로 근성으로 기도하지 말라.

마음에서부터 간절하게 “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고, 선교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가고 오는 길을 지켜 주소서.”


맨발로 아예 걸어가는 아줌마도 있다. 우리도 어릴 때 맨발로 다니지 않았던가?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맨발이 폭신폭신한게 땅바닥에서 더 감촉이 좋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말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오랑“(Orang)하면 단수이고, 오랑오랑(Orang orang)하면 복수가 된다고 웃을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깡충 깡충, 넘실 넘실, 얼마나 그러한 의태어 의성어들이 많은가?


말레시아 말이 쉽다고 누가 말했던가? 자꾸 배워보시라. 모든 물건에 따르는 말레시아 단어가 따로 있다. 왕족 언어, 친구 언어, 상업 언어, 존칭어 이런 것들을 다 배우려면 머리를 한참 싸매어야 한다. 또, 인도말, 산스크리트어, 아라비아어, 영어에서 흘러 들어온 외래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최고 통치자 “술탄‘이 어느 동네 말 같은가? 아라비아어요, 구약 성경에도 나오는 ”슐탄“을 말레시아어에서 그대로 쓰고 있다. 

말레시아 사람들이 영어 발음이 좀 미국식 영어를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 귀에 거슬리는 것은 맞는 말이다. 입장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미국식 발음도 아닌, 한미 연합식 영어를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 영어발음이 말레시아 사람들 귀에 거슬릴 것은 우리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갑자기 언어 이야기 인가?

의사만 잘 통하면 되지 않는가? 너무 멋있게 영어를 하려다가 의사 소통 잘 안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점이다.


어쨌든지 맨발로 산을 올라가는 숭아이 삐낭 아주머니가 운동화를 신은 나보다 훨씬 잘 걷는다. 아마도 자기 고향에 아니 친정에 간다고 더 빨리 가는 모양이다.


숭아이 삐낭(Sungai는 강, Pinang은 이반 사람들이 결혼식때 쪼개어 맞붙여보는 열매이름)

이 마을 뒤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고, 그 주위에 부아 삐낭(Buah Pinang)이 많이 열린다.


부아 삐낭에 대한 경험과 씹는 이유에 대해 잠간 알고 넘어 가자.

늙은 할머니들이 씹고 있는 자주색 물감색 즙이 입가에 묻혀서 이가 온통 빨갛다. 치아 건강에도 좋겠지만, 늙은이들이 자기 방어용으로 씹고 있는 것이다. 머리 자르기 풍습이 있는 동네에서 상대방에게 흉칙하게 보이면서, 자신의 치아를 보호하니 일석이조.. 

결혼식 때에는 신랑측과 신부측에서 각각 쪼개어 보고 서로 맞추어 본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와! 잘 맞는다”고 경찬하는 것이 그들의 풍습이다.


이반족 사회에서는 결혼식이라고도 말하지만, 삐낭 맞추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아줌마 중에서 낭아 다라이 마을에서부터 시집온 사람들이 몇몇 있다. 24세쯤 되는 추장 아내를 비롯하여 3세람은 될 성싶다. 꺼냐족은 삼촌과 여조카가 결혼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반족은 금하고 있다. 단, 이반족 온 동네가 알도록 특별한 예식을 올리고 추장이 허락하면 결혼을 할 수는 있어도 평생 부끄러운 일이 된다.


특별한 예식이란 근친결혼 당사자나 근친 상간(incest)한 사람들은 추장 앞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 두 사람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세 번 강물에 집어 넣는다. 돼지를 잡는다.칼로써 강물을 친다. 주문을 외운다. 옛날 이반족 신화에도 신들끼리 그런 일들이 있지 않았느냐고, 이 땅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으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는 골자의 주문이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강가에서 행진하다. 그러니, 결혼을 하기 위해서 이런 부끄러운 공개 행사를 해야하니까, 감히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풍습(adat)을 제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웃 마을로부터 배우자를 얻어 오는 것이 떳떳한 것이다.         


     

약 20분쯤 그렇게 많은 비가 이 지역에서는 안왔는지 미끄러운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그런대로 산행길이 편안했다.  갑자기 아줌마들과 여청년들이 “와!!!”하더니, 선착순으로 밀림의 골짜기를 달려내려 간다. 10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였지만, 나무 밑동과 풀을 뒤지더니, 크리스탈 수정체 같은 둥글고 허물허물한 것이 자두 열매만한 것인데, 마치 해파리 색깔과도 같았다. 이름을 수첩에 기록해 놓았는데, 생각이 지금은 잘 안 난다. 차치하고, "아빠 이니?"(Apa ini?이게 뭐냐?)하고 물어보니, 음식을 해먹는다고 한다.


깨끗한 물에 흙을 씻어 내고, 한 냄비 채우더니 설탕과 기름을 넣고 삶아서 내어 놓는다. 입 안에서 이리저리로 다니지만 맛은 미역맛 비슷했다. 분석은 안해 봤지만 영양가 엄청 많을 듯하다. 저녁 반찬 거리를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이다.


또 15분쯤 갔을까? 산 고개 너머에서 촌로를 만났다. 고향 마을 할아버지가 자신을 산밭을 가꾸기 위해 혼자 나와 일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만나서 반겨준다. 밀림에 있는 열매가 주인이 없다고 우기지 마시라. 밀림에도 구역이 있고, 모든 나무에도 다 주인이 있다. 람부딴을 따먹으라고 허락하자 청년 한 명이 금방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Parang 휴대용 긴 칼로써 람뿌딴 나뭇 가지를 쳐서 아래로 떨어뜨렸다. 시큼 달콤한 그 맛.... 목마른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옆에 있는 점바닥을 따먹으란다. 미끌 미끌 달콤새콤---   

손만 뻗치면 열매들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땀은 벌써 온 몸을 휘감는 낙동강물처럼 되었지만, 열매를 먹으면서 모두들 재잘거린다.


이제 내리막길! 나무 다리들 통과! 강물 통과! 무릎까지 오는 강물! 운동화를 손에 들고 가방을 어깨 옆에 걸치고 균형을 맞추어 한발 한발씩 도강! 7미터 나비의 강이지만 물에 일단 넘어지면 온 몸이 물에 잠기고 잠간 떠내려갈 것도 각오해야 한다.


왜 이들이 샌달로, 혹은 맨발로 가는지 이제야 알았다. 물에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다시 양말 신고 운동화 신고 30미터쯤 걸어갔는데 또 개울물!  4번을 건너야 한다니 아예 나도 맨발로 걷기로 했다. 작은 돌맹이에 발바닥이 압력을 받아서, 발밑이 따끔거린다.


마을 입구에 오니, 삐링들이 일열로 우리를 반기는 듯 서 있다. 삐링은 귀신밥을 대나무 가지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이 마을에는 귀신을 섬기는 마을이다. 이반족에게는 그들의 생각으로 말씀을 드리면, 좋은 신(뻐따라, petara)과 나쁜 귀신(안뚜, antu)이 있다.

좋은 신을 부르기 위해서 삐링(제삿밥)을 바쳐야 하고, 나쁜 귀신을 쫓기 위해서도 귀신밥을 설치해 놓아야 한다.


집 안에는 곳곳에 낡은 귀신밥을 걸어 놓았다. 롱하우스 끝에 인방에는 주민들의 문(pintu)의 개수와 같은 대나무 살 접시를 매달아 놓았다. 젯밥에는 바나나, 삶은 달걀, 담배, 밥, 열매들을 나뭇잎 위에 5 점씩 혹은 7점씩을 놓고 싸매고 Tuai Burung이 주문을 외우고, 수탉(어쩌다가 암탉도 됨)을 삐링(젯밥용 접시) 위에서 빙글빙글 흔들고, 그 수탉의 목을 칼로 찔러서 땅바닥에 뿌리고(이는 귀신의 범접을 막기 위함), 젯밥을 부엌이나 문 입구나 필요한 요소에 매어달아 놓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아야할 귀신을 두려워 하게 된다.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세상인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엉뚱하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성질 고약한 늙은이, 지위 높은 사람, 귀신, 돈 많은 자, 그외에 여러가지를 두려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가 겪는 마음의 심판을 미리 경험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어떻게 하면 귀신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들의 종교심은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참 신,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면 그 많은 petara와 antu로부터 놓임을 받을텐데--   


우리의 능으로도 안되고, 지식으로도 안되고, 오직 에스골 골짜기에 불어온 하나님의 영으로만이 이들의 영을 살리고,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장수와 부귀와 영광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럴 수밖에, 자연과 인간과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리라.


추장은 일자리 때문에 엔낄리리(Enkilili)로 가고, 그의 부인만 집에 있다. 추장이 있어야 사람들이 말을 잘 듣고 많이 모인다. 그래도 집회는 밤 9시경부터 시작되었다. 담배도 잘 안 피운다. 여러번 말했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는 마을에는 많은 개종자가 나온 것을 보아온 터라 해본 말이다. 전도를 시작하고 1 시간이 지나갔다. 밥 먹을 때 물어 본 것이지만, 한국 사람으로서는 내가 두번째 왔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외국 사람들이 관광차 연구차 다녀간 흔적들이 보인다. 본격적인 전도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숭아이 삐낭 마을 전도팀들이 찬양을 열심히 인도해 나간다. 이반 찬송이니까 이들이 알아듣고 따라 부른다. 결과는 아무도 믿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다. 가져간 성화 액자를 추장 부인에게 기념으로 선물했다. 모두 박수친다.


이반족은 한 번 방문으로 전도의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2번 3번 방문을 거듭할 때, 우리를 신뢰하게 되고, 왜 이들이 아무 수입도 없어면서 그 먼 데서부터 이 밀림 산골짜기까지 찾아 오는가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굴이 낯익고, 사람이 좋아보이고 믿어지면,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을 믿고, 그가 소개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또, 이반족 마을 사정이 악화되어 있으면 더욱 좋은 때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름 시름 아프다든지, 농사가 안 된다든지 하면 귀신밥 바쳐봤자 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전도자가 소개하는 전능하신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좋은 것이 귀신밥 번거럽게 안바쳐도 되고, 돼지 안 죽여도 되고, 헌금은 자신이 알아서 내면 되고, 돈 없으면 헌금 안내도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기도하면 그렇게 안 낫던 병이 쉽게 떨어지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라이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알 리가 있나? 그래서, 우리 전도자들이 알려 주러 간 것이다.

전도 후에, 다라이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야기 한 바탕하고 노래 신나게 한 후에 모든 집회가 끝났다. 밤 11시쯤.


할머니 한 두 분이 앞으로 나오더니 여기가 아프니까 기도해 달란다. 열심히 1인당 5분내지 10분씩 머리와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기도를 해드렸다. 숭아이 삐낭 아줌마들도 가세해서 통성으로 그들의 말로 통성으로 기도했다. 나는 이반말 약간, 말레이 말 조금, 뭔가 답답하다.  하나님께서 잘 알아들으시니 한국말로 속 시원하게 기도드렸다.


사라왁 미리에서 1박하고 마루디로 4시간 고속정 타고 가서 나우 아젱 현지인 목사집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랜크루저 밀림용 소형트럭을 타고 2시간 산길로 가서, 보트타고 물길로 2시간을 가서 도착한 롱리림 마을에 갔을 때, 그 다음날 새벽 기도 시간,  밀림의 뿌난 족 사냥족 마을 예배당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 후에, 그 아버지가 아기를 안고서 하는 말이 당신이 말레이 말로 할 때보다 한국말로 기도할 때 내 가슴이 더 가슴이 찡했다고 설명을 했다. 지금도 말레이 말이 형편 없는 수준인데 그 때는 어떠했겠는가? 사실 그들은 말레이 표준말도 잘 알지 못하는 유목민 뿌난족이 아니던가? 외국인들 입장으로보면 한국말 기도는 능력의 방언 기도가 되는 셈도 되니까.


말이 안 통하면 어떻게 전도할 수 있나요? 질문을 해 오는 선교 초보자들이 있다.

말이 잘 통하면 전도가 더 안되는 수도 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전도해보라 요즈음 잘 믿는가? 옛날만 못하다. 말 못해서 전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 사람은 믿는 구석이 많다. 돈, 지엔피, 재력, 지력, 좋은 의료시설--- 이런 것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 가기 힘든 사회가 되어 버렸다. 좋은 조건에서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이반족들도 믿는 구석이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잘 영접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농사가 잘 되는 듯 할 때, 건강하고 온 식구 잘 될 때....


전혀 그 부족말을 몰라도 사랑으로 대하고, 친구가 되어주고, 현지어가 능통하게 될 때까지 노력하고, 안 되면 한국말로라도 기도해 주면, 그들이 다 이해해 주고 마음으로 느끼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 2분에게 공짜로 기도를 해 주었더니, 또 다른 분들 서너명이 줄을 선다.

1인당 평균 7분 정도라 해도 40분은 걸린다.  밤 12시가 넘어서 취침하다.(Tirok)

이날 기도해준 분들은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을 했다. 집단 전도는 첫 전도일이라서 열매가 없었지만, 5명 가량이 예수를 믿겠다고 했으니,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일진데, 천하를 다섯 개나 이날 밤에 얻은 셈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라이 마을을 떠나서 출발했다. 아예 맨 발로 개울 4개를 건넜다. 편했다. 다라이 산 마을은 내가 11 년동안 방문한 사라왁 밀림 마을 중에서 가장 아름다왔다.    이들이 이 깊은 산 중을 떠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홀려서 그럴까?

이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빼앗기고, 밀림의 이 마을 저마을로 다니면서 전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다라이 마을을 뒤로 두고 나의 발길은 하나둘 옮기고 있었다. 5월 24일부터 싱가폴 청년들과 다시 다라이 마을을 방문할 날을 고대하면서---      

사라왁에서, 루카스